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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잔의 쇼콜라쇼에 파리를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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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야신스'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0.10.08 <빠진 원고 002> 히야신스
2010. 10. 8. 00:25 ETC...

# 히야신스

히야신스 hyacinth

::: 백합과에 속하는 구조식물의 하나로 백, 분홍, 적, 자색 계통의 꽃이 방망이 모양처럼 됨.

 

볕 좋은 일요일 오후, 파리가 처음 시작된 시테섬으로 건너갔다. 기원전 3세기에는 작은 어촌이었을 이 곳이 지금은 1800개 이상의 명소와 157개의 미술관, 145개의 극장과 380개의 영화관이 있는,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도시의 심장부로서, 그 심장부의 가장 센터에 꽃시장이 형성되있다.

좌안에서 우안으로 건너다닐때 자주 봤던 플라워 마켓이었는데, 한번도 안쪽까지 들어가 본 적은 없었다.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강가쪽까지 크고 작은 전나무를 진열해 놓았었다. 제일 작은 나무라도 하나 사보려고 했지만, 생각보다 비싼 가격에 번번이 미루다가 결국 크리스마스가 지나버렸다.

콩시에르주리(Conciergerie)건너편,  Pl Louis-Lepine 에 초록색 빛깔의 외벽을 한 큰 하우스 모양의 건물이 다 플라워 마켓이다.

1808년부터 시작된 이 꽃시장은 파리에서 아마도 가장 오래되고, 아마도 가장 큰 꽃시장이라고 한다.

몇일간 내려가 있던 기온이 올라서 그런지 다른 날보다 꽃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월요일빼고 매일 문을 여는데, 보통은 식물들과 간단한 정원 인테리어 소품들을 많이 팔고, 일요일에는 재주 부리는 새와 작은 물고기, 거북이 등등을 팔기도 한다.

작은 월귤나무, 허브, 서양란, 히야신스, 채 못팔고 남은 크리스마스 리스까지 다양한 꽃들이 각 상점의 가판대를 빼곡이 채우고 있었다.

몇 군데의 상점을 그냥 지나다가, 문득 파리에서 탐구생활 한 꼭지를 늘 차지하던 알뿌리 식물 키우기에 도전하고 싶었다.

방학때마다 가끔은 양파를, 가끔은 감자를, 가끔은 히야신스를 키웠었는데, 늘 뿌리가 통으로 썩어나가거나, 채 꽃이 피기도 전에 잎 끝이 누렇게 변했던 겨울 방학 숙제를 여기에서 만회해보고 싶었다.

뜬금없는 생각이었지만, 방안에 하나 정도 살아있는 식물을 두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통로 중간쯤, 인심좋아 보이는 아줌마가 서있는 꽃집에서 발을 멈췄다.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히야신스 하나를 집어 들으며 찬찬히 살펴보니, 이미 꽃이 핀 히야신스는 보라색으로 색이 고왔지만 너무 많이 개화되서 얼마 못가 다 질것 같았다.

아직 봉우리만 맺혀있고 꽃은 개화하지 않은 히야신스중에서 제일 봉우리가 많아 보이고 싱싱해보이는 녀석을 하나 골랐다.

샌드위치보다 저렴한 2.50유로... 동전을 세서 아줌마의 손바닥에 올려놓고, 하얀색 히야신스 하나를 받아들었다.

 

집에 가져와 조심조심 작은 그릇안에 담아놓고 하루 한번씩 물을 주면서 키워나갔다. 미미라는 이름도 붙여주었고, 잘 지내보자고 인사도 건넸다.

다음 날, 약 10개의 꽃봉오리가 터져 방 안가득 상큼한 향을 내뿜더니, 다음날에 또 다른 10개의 꽃봉오리가 톡.톡. 터지며 꽃을 피웠다.

그렇게 5일 정도가 지나자, 닫혀있던 모든 봉오리에서 눈부신 흰색 꽃들이 피어올랐고, 향기도 절정에 올랐다.

아침마다 책상에 앉아 코를 킁킁거리며 향을 음미했다. 음악을 들려주고 잎을 닦아주었던 아니었지만, 아침 저녁으로 인사를 해대고, 물을 주면서 지낸 지 10일.

미미는 점점 그 순백의 화이트빛을 잃어갔다. 처음 꽃봉오리를 터트릴때보다 더 빠른 속도로 갈색으로, 갈색으로 변해갔고, 꽃 모양 그대로 버석하게 건조돼갔다.

물을 주고, 조금 더 따뜻한 곳으로 자리를 옮겨주고, 낮엔 볕이 잘 드는 곳에 두었는데도, 나의 보잘것 없는 노력탓인지, 어느 날 집에 돌아와보니 온통 갈색 꽃으로 이루어진 미미가 무거워진 꽃봉오리 가지끝을 노트북쪽으로 살짝 드리우고 있었다.

 

갈색으로 변해버린 미미를 그대로 버리진 못해, 계속 책상 한쪽, 가장 밝은 곳에 두고 서울에 올 때까지 말을 걸었다.

물론, 마지막 짐싸는 날- 미미는 가차없이 여러번 꿰어신었던 양말들과 함께 쓰레기통에 통째로 쳐박히고 말았지만, 방에서 혼자 히야신스를 기르며 소일거리 삼았던 10일동안은 친구가 없어도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



시테섬 꽃시장에서 사온 작은 히야신스 화분 하나로- 열흘가량 혼자 놀았다.
방이 작아서, 꽃이 피면서 뿜어져 나오던 그 아련한 향기는 아직도 코끝에 머물러 있다.
지금이라도 양재동이나 서오릉 꽃시장에 가면 구할 수 있는 히야신스겠지만...
아마도 꽤 오랫 동안은 기억속에 남아있는 잔향의 추억만으로 만족해야겠다.



posted by isy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