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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잔의 쇼콜라쇼에 파리를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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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0.11.27 <빠진 원고 3> Seat No. G12
2010. 11. 27. 00:57 ETC...

- 원고를 걸러내다가 뺄 원고 일순위레 랭크됐던 글이다.
일기장에 썼던거 그대로 긁어왔더랬다. 더도 덜도 아닌... 딱 저렇게 민망한 상황이었다.
다시 볼 사람도 아니었으면서 그 사람의 나에 대한 마지막 인상이 꼬질한 어그부츠에 짐 잔뜩매고 땀이나 뻘뻘 흘리고 있는 사람은 아니길 바랬지만.. 아마 더한 이미지로 남아있지 않을까 싶다. ㅎ.

딱. 일년 하고도 하루 전...
매우 복잡한 마음으로 나는 파리가는 비행기를 탔었다.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 곳도 없었다. 떠나는 바로 전날 스캐머에게 당해 사기를 된통 당했던 나는- 비행기시간 하루 남겨두고 조카의 고모댁에 전화를 걸어 일주일만 재워달라고 뻔뻔한 부탁까지 했었다.
그까짓 카메론 *새끼 때문에 취소할 수 없는 티켓이었다. 빨리 가고 싶었다.
아무도 없지만. 또 그래서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다고 믿었기에... 나름 꽤 설레하면서 열시간을 날아갔다.
그게 벌써 일년 전... 시간은 정말 쏜살같이 지나고- 나는 그대로인데 조카들은 벌써 애어른이 다되어 가고...
진짜 여기서 탈출하고자와! 하면서 파리로 갔던게 일년전인데... 나는 또... 아.. 짐싸야해 짐싸야해 하는 생각만 하루종일 하고 있다. 아마도.. 나는.. 바람때문에 스쳐다니는것이 아니라... 겨울이 싫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 

아무튼.. 일년을 맞아. 여러가지 생각들이 떠올라... 특히나 파리에 버리고 온 핑크색 어그부츠가 그리워져서 *앤 샵을 통해 좀전에... 지름신 모셔주었다. 올 겨울에도 잘 부탁해, 핑크어그님!!


12G... 카레라 가방하나를 캐빈안에 던져놓고, 두개의 노트북이 든 카메라가방보다 큰 배낭을

그 옆에 쑤셔놓고 자리에 앉으니 앞 좌석 모니터에 비친 내 얼굴에 절로 실소가 난다.

가뜩이나 작은 눈은 더 쳐져보이고-  오버된 짐때문에 아침부터 짐을 다시 쌌다 풀었다 하며 용써서 그런지

이마와 콧잔등이 번들번들하다.

모니터에 반사된 얼굴을 보고 있자니... 오전 내 일었났던 일들때문에 어이없는 웃음이 비죽 비죽 입술새로 새어나온다.

 

내 계획은...  아주 간단했다.

보딩을 하고, 맨 앞자리 통로를 배정받고, 우아하게 아이스 라떼를 같이 마시며 호호호호. 여행에 관한 얘기를 하다가 쿨하게 인사를 하고 헤어지는것.

그리고, 여유롭게 대기 의자에 앉아 책을 보고, 앞으로의 일에 대한 계획을 다시 세우다가 허리 꼳꼳하게 펴고 비행기에 올라 앉는것.

단지 그것 뿐이었는데 - 공항에 도착하자 마자 모든일이 틀어져 버렸다.

어쩌면... 아침 먹고 치우다가 박살을 낸 시뻘건 깍두기의 저주일지도.

생각보다 일찍 도착해 공항까지 데려다준 희수오빠랑 커피 한잔 하면서 여유를 부리다가 보딩을 하러 갔더니 짐의 무게가 10킬로나 오버됐다고 25만원의 차지를 물어야 한다고 했다.

두 개의 짐을 잘 배분해서 다시 오기로하고 일단 후퇴하려고 하는데, 내 뒤쪽에 아는 분의 아는 사람이 딱 서있는게 아닌가.

일단, 인사를 하고- 보딩 먼저 하시라 하고, 짐을 질질 끌고 옆으로 물러나 있는데

짐을 열자마자 튀어나온 나의 줄리어스(헝겊 원숭이인형). 그리고- 짜파게티와 우드락과 생리대. 

도와준다고 옆에 서있던 희수오빠에게도 민망해서 최대한 가방 뚜껑 다 오픈안하고 살짝 살짝 빼고 있는데 그 사람이 어느새 보딩을 끝내고 내 뒤에 서서 나름 안면이 있다고 인사를 한답시고 "이사가세요?" 라는 말을 한다.

짜파게티가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 없었고,,, 카메라 트라이포드와 장판 컨트롤러 사이사이에 쑤셔넣은 위스퍼가 그렇게 창피할 수가 없었다.

 

힘겹게 짐 두개를... 마일리지 감면으로 짐 하나 빼지않고 보낸 후에 희수오빠에게 인사를 하고 세관검사를 하는데,,, 아. 오늘따라 난 배낭 두개에, 핸드백 하나... 

노트북 두개 빼고, 어그 부츠 벗어 올리고,

주머니에 잔뜩 든 동전과 출장때만 가져가는 플라스틱 시계까지 다 풀러넣고 통과...

그 사람은 단촐한 가방 하나로 미리 통과해서 내 짐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에 파리에서 신고 버리고 오려고 햇던 때 꼬질꼬질한 핑크 어그부츠 억지로 구겨신자니 무릎까지 마비가 와서 죽는줄 알았다.

짐이 왜 이렇게 많아요.  웃으면서 말은 하지만... 이미 심신이 너덜너덜해진 나는 저 원래 이렇지 않아요- 라고 강하게 변명조차 할 수 없었다.

내가 늘 공항에서 허둥대며 짐을 다시 싸고, 난리 법석을 피우는 사람들을 보면서 했던 그 수많은 우쭐한 생각들을 똑같이 이사람이 하고 있겠구나 생각을 하니 등골이 휘도록 뒤에 짊어진 배낭의 무게가 더 힘겹게 느껴졌다.

나도 카메라없이, 노트북 없이- 남들처럼 뾰족구두에 가방 하나만 달랑 들고, 우아하게 선글라스 낀채로 비행기 타고 싶었다.

어영부영 커피를 마시고, 잠깐 쇼핑을 하고, 공항 중앙홀에서 각자 게이트로 가려고 헤어지면서도 아. 완전 망했다... 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고 웃으며 인사하는 그를 붙들고, 저 진짜.. 진짜 맨날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여행다니는 사람 아니에요. 이것 저것 바리바리 김치까지 싸들고 가면서 여행다니는 사람 아니거든요.. 라고 귓등에도 닿지 않을 변명을 하고 싶었다.

즐거운 여행 하세요 라며 그가 눈인사를 건네고 발걸음도 가볍게 게이트 앞으로 걸어나갔을때 내 정수리엔 다섯 가닥의 흰머리가 새로 솟았고, 위액은 다시 식도로 올라왔다.

이번 겨울도 화이팅 하자!

posted by isygo